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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백인 우월주의 본격 해부 신간 '카스트'

by 데니스 한 202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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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트는 인도에만? 美 불평등이 카스트다

 

2018년 3월 25일 76세를 일기로 숨진 린다 브라운(왼쪽)의 어릴 적 모습. 브라운은 1954년 미 연방 대법원이 학교의 인종차별 철폐 명령을 내리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첫 흑인 여성 수상자인 극작가 수전 로리 팍스의 희곡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백색 소음)'는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다. 인종 문제를 적절한 수준의 백색 소음에 빗댄 것은 차별과 불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미국 사회를 꼬집기 위해서다. 선악의 이분법적 잣대로만 다루기에는 인종차별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는 판단일 터다.

언론인 출신 작가로, 퓰리처상 저널리즘 부문의 첫 흑인 여성 수상자인 이저벨 윌커슨이 인종차별을 인도의 세습적 신분제 카스트에 비유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윌커슨은 미국에서 2020년 출간돼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된 신간 '카스트'에서 미국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아주 오래되고 내성이 강한 바이러스"라고 언급한다. 저자는 개인의 편견으로 비치기 쉬운 '인종차별주의'라는 표현 대신 1,000년 넘게 이어진 카스트 제도로 미국의 인종차별 실태를 풀어낸다. 그러면서 미국의 인종적 위계질서의 끈질긴 생명력을 강조하고 그간의 무지에 대한 책임과 각성을 촉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를 강제화한 '짐 크로법'을 20년 가까이 연구한 저자는 전작 '다른 태양들의 온기'(2011)에서 1915년부터 1970년까지 약 600만 명의 흑인이 짐 크로법이 지배하던 미국 남부, 즉 카스트 체제의 낙인을 벗어나 이주한 이야기를 다뤘다. 저자는 9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책 '카스트'에서 '미국의 카스트 체제'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본다.

책에 따르면 카스트는 인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유대인을 공포에 떨게 한 독일 나치의 인종주의, 겉으론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계급사회 유지에 일조한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가 모두 카스트 체제다.

저자는 특히 성문법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하는 암묵적 권력 카르텔을 더 경계한다. 인도의 카스트 체제는 헌법에 의해 철폐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하층민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은 여전하다. 미국은 160년 전 노예제가 폐지됐지만 피부색 때문에 역량이 평가절하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설의 투수 새첼 페이지는 검은 피부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배제됐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출생지와 시민권을 트집 잡는 음모론자들에게 시달렸다. 저자는 "카스트가 미국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카스트 없이 미국의 어느 한 부분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부연한다.

저자는 내면화되고 고착화된 일상 속 카스트를 강조하면서 "카스트는 영화가 상영 중인 어두운 극장에서 손전등을 바닥에 비추며 지정된 좌석으로 안내하는 말 없는 가이드"라고 묘사한다. 손전등의 작은 불빛이 이미 정해져 있는 자리로 인도하듯 무의식적으로 서열을 매기는 카스트가 종종 인식하지 못하는 곳까지 인류를 데려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착화된 카스트 체제는 8가지 견고한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자연의 법칙, 대물림, 혼인 금지, 순수 혈통, 노동 계층, 우생학, 공포 정치, 인간성 말살 등이다.

'카스트' 저자 이저벨 윌커슨. ⓒIsabel Wilkerson

무엇보다 저자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잘 쓰이지 않는 카스트라는 말을 동원해 불평등 문제를 조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차별과 혐오가 소수의 문제가 아님을 꼬집는다. 그는 타인에 대한 사고의 무능에서 평범한 악이 시작된다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며 "무지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불의를 보면 독재자 한 사람만 비난하고픈 충동을 느끼지만 사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이 카스트라는 메커니즘을 용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카스트라는 메커니즘과 자연스러운 차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피부색의 문제는 아니지만 장애인과 여성,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현실에 처해 있는 한국 독자들도 과연 저자의 경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카스트·이저벨 윌커슨 지음·이경남 옮김·알에이치코리아 발행·500쪽·2만5,000원

 

출처: 한국일보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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